"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교육으로" 제주 '꿈들'의 유쾌한 실험
 글쓴이 : 꿈틀1
작성일 : 2018-03-08 15:09    

[아름다운 나눔] '뭔가 다른 공부방' 내년 3월 탄생 "아이도 교사도 성장해야죠"

 

IMG_1558.JPG
▲ 인터뷰에 응한 '꿈들'의 선생님들. 왼쪽부터 정연일, 하수연, 윤경용, 김찬경 씨. ⓒ 제주의소리

10년 전 제주교대(현 제주대학교 교육대학) 총학생회는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제주시 건입동의 한 작은 주택을 구해 공부방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발품을 판 끝에 겨우 낡은 2층 주택 중 1층 20평 가량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 동안 이 곳을 거쳐간 아이들만 해도 100명 가까이 된다. 

국어, 영어, 수학 등 과목 뿐 아니라 학교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프로젝트 수업과 토론 수업, 음악회와 외부활동도 진행됐다. 소외계층 아이들에게는 학원이나 과외 못지 않은 소중한 기회였다. 학교가 끝난 뒤 갈 곳이 없던 아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의 안식처가 됐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 공부방은 지은 지 40년이 돼 비가 새고, 난방도 되지 않고, 마당도 없고, 유리 등 시설이 전반적으로 노후했다. 위험스럽기도 했다. 이들이 올해 초부터 새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한 이유다.

처음엔 “컨테이너 건물이라도 마련해야지”라는 마음을 먹었다가 다행히 일이 잘 풀렸다. 10월 24일 아름다운가게 제주 동문점에서 열린 기금 모금 바자회는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잘 마무리됐고, 일일찻집과 주점도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큰 금액의 후원을 해주겠다는 기업도 나타났고, 부지를 찾아다니다 제주대 측과 얘기가 잘 돼 터를 잡을 수 있었다.

이제 내년 3월이면 제주시 건입동 제주여상 근처에 60평 규모의 새로운 공부방이 탄생한다. 아이들과 함께 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마음이 지역사회를 움직인 셈이다. 

1층은 공부방, 2층은 교사나 학부모 연수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도록 꾸밀 참이다. 지역사회와 부모, 아이들, 교사들이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는 장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171267_194924_2121.jpg
▲ 10년 전부터 운영된 공부방은 학교가 끝난 뒤 갈 곳 없던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따뜻한 안식처가 됐다. 기본적인 교과목 강좌부터 다양한 프로젝트, 토론 프로그램 등이 진행됐다. /사진 제공=꿈들 ⓒ 제주의소리

 

제주교육에 대한 고민, ‘꿈들’로 뭉치다

 

그런데, 이 공부방 선생님들 뭔가 범상치 않다.

올해 9월 이 작은 공부방의 멤버들은 비영리민간단체(NPO) 교육성장네트워크 ‘꿈들’로 다시 태어났다. 지난18일 오후 만난 김찬경(31) 무릉초 교사는 ‘꿈들’이 어떻게 태어나게 됐는지 묻자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었다는 얘기를 꺼냈다.

“교육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공부방에서 활동하면서 선생님들과 고민도 해보고,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과 연결되는 과정이었죠. 마침 공부방 출신 선생님들이 교육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그런 사람들이 제주 곳곳에 흩어져 있는데 이걸 하나로 힘을 합쳐서 동력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연스레 정말 제주 교육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모이게 됐죠”

사실 ‘꿈들’을 단순히 ‘방과 후 공부방 운영 단체’라는 수식어로만 한정한다면 이들의 정체성을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 이들은 오히려 ‘아래로부터의 변화’, ‘현장으로부터의 혁신’을 꿈꾸고 있는 공동체다. 교육으로 세상을 더 따뜻하게 바꾸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꿈들의 탄생 배경은 바로 여기에 있다.

교사들은 현장에 나가게 되면 자신의 이상과 현실이 부딪치는 경험을 하기 마련. 일상에 매몰되면서 이런 가치들을 접게 되는 게 흔하단다. 자기 정체성이 흔들리는 순간이 올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꿈들’이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장에서의 고민을 바탕으로 제주 교육을 건강하게 바꾸고 싶은 흐름을 만들고 싶다는 게 이들의 소망이다. 김 교사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사회를 바꿀 수 있을지 각자의 영역에서 노력하지만 교육이 가진 힘이 남다르다는 걸 많이 느껴요. 공교육이 아쉬운 게 그 구조 안에 몸 담은 교사들이 교육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멀어져버리기 일쑤예요. 대안이 필요한 거죠. 물론 교육감님의 의지와 정책도 중요하겠지만 선생님 차원에서의 이런 문제의식의 시작점이 ‘꿈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예비교사, 현직교사, 교사가 아닌 일반인들, 대안학교 선생님, 교수들이 다 연결돼서 교육을 통해 세상을 바꿔보자는 거에요. 제주사회에 이런 일을 하는 곳이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지 않을까 기대해요” 

꿈들의 멤버 중 한 명인 대안학교 보물섬학교의 정연일(46) 교장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정 교장은 성적순으로 모든 걸 결정해버리면서 불행해지는 학생들의 모습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어 대안교육에 뛰어든 인물이다.

“대한민국 교육을 두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장, 많은 분들과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냈다는 게 기뻐요. 가장 현장, 밑바닥에 있는 친구들의 바람과 요구, 희망을 들을 수 있거든요. 이제 그런 것들을 사회에 적용시켜야 변화가 이뤄질 테죠. 교육감이나 상층에서의 선언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기층에서 이런 움직임이 있는 게 정말 의미 있어요. 대안교육과 공교육이 만나고, 교육을 전체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는 틀이 마련됐다는 건 큰 희망이 있다는 얘기 아닐까요?”

교사연수.jpg
▲ '꿈들'의 지향점 중 하나는 '교사들의 성장'이다. 제주 교육현실에 대해 건강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내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준다는 구상이다. 사진은 공부방 교사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교사연수 프로그램. /사진 제공=꿈들 ⓒ 제주의소리

할 일 많은 ‘꿈들’, 새 바람이 꿈틀댄다

이런 고민으로 뭉친 이들이기에 앞으로 할 일이 적지 않다. 새로 생길 보금자리는 ‘방과 후 공부방’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역 교육의 변화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길 공간이다. 또 ‘교육의 변화’를 꿈꾸는 이들을 하나로 이을 연결고리다. 또 교육으로 사람을 바꾸고 이를 통해 사회를 바꾸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의 거점이기도 하다.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의 지평을 넓혀줄 공부방 프로그램, 예비교사에 대한 생생한 현장 교육, 부모 대상 교육 프로그램, 다양한 고민과 논의의 장이 펼쳐질 예정이다. 부모와 교사, 아이들, 마을주민, 도민들이 하나로 어우러져서 삶과 교육을 고민할 수 있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들을 얼마나 충실하고 안정감 있게 이끌어갈지는 ‘꿈들’의 멤버 120여명의 몫이다.

흥미로운 건 ‘교사들의 성장’이 이들의 주요 목표 중 하나라는 것. 정연일 교장은 말한다.

“자신들의 경험에 근거한 교육단체, 연합은 많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성장은 도모하지 못한 것 같아요. 세상의 변화라는 건 본질적으로 사람의 변화를 이뤘을 때만 가능한 것인데...”

 

이런 맥락에서 예비교사인 제주대 교육대학 3학년 하수연(23.여)씨는 ‘꿈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IMG_1573.JPG
▲ '꿈들'의 일정은 주말에도 이어졌다. 인터뷰를 위해 일요일인 지난18일 오후 이들을 만나러 갔을 때도 적지 않은 숫자가 모여 '꿈들'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 제주의소리

“제주의 교육을 변화시키면서 이 안에 있는 사람도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또 좋은 교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을 연결할 수 있으면 해요. 사실 그 동안 공부방이 좋았던 게 교육에 대한 어떤 고민이 생겼다는 거예요. 사실 학교 내에서는 교육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았거든요. 이 ‘꿈들’이 저희 학생들에게도 뭔가 배우고 싶고, 느끼고 싶고, 고민을 하고 싶으면 찾아올 수 있는 곳이 됐으면 좋겠어요. 저는 공부방을 2년 동안 하면서, 교육 관련된 고민을 하면서 저의 삶에 대한 고민까지 연결이 되더라고요”

 

예비교사 윤경용(24)씨도 마찬가지다. “공부방을 하고 꿈들 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을 보는 눈이 많이 바뀌었어요. 일방적인 지시보다 상호작용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죠. ‘꿈들’을 통해서 선생님들이 성장을 하고, 선생님들 간 꿈들이 공유가 되고, 그 선생님들이 다시 학교로 가서 아이들과 마주하면서 생길 일들이 기대돼요. 여러 가지 질문이 생기고 답을 찾아가다 보면 서로가 성장하게 되는 것 같아요”

교육에 희망을 찾고 싶은 이들, 교육을 통해 변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엮기 위해 닻을 올린 ‘꿈들’. ‘고민하고 공부하는 선생님’ 그리고 ‘교육의 변화를 꿈꾸는 이들’을 하나로 이어줄 새로운 교육 공동체.

내년 봄부터 본격화될 이들의 유쾌한 실험이 제주지역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지 기대감에 찬 눈들이 적지 않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http://www.jejusori.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